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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와 온기

냉기와 온기 / 정대수 불타는 여름에는 겨울이 좋단다살을 에는 겨울에는 그 여름이 좋단다어쩌면 이렇게 오락가락하며 사는 것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한들다시 그리워질 지난 모습들임에도마치 전혀 몰랐던 이방인처럼 외면하기를 반복하는물과 불의 맞대결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양극의 대립으로땅이 갈라지며 얼어붙게 만드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름 모를 이들의 손이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맹렬한 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가바람처럼 홀연히 떠난 자리에는냉기로 싸였던 사방은 온기로 퍼지며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뿌리쳤던 손을 소리 없이 맞잡는 숨 막히는 여운에보이지 않았던 벽이 무너지는 찰나의 시간은모두가 꿈꾸는 밝은 세상을꿈처럼 눈앞에 펼쳐 놓는다.

도화지

도화지 / 정대수 온갖 색칠을 하며 그려온 여러 가지 그림을모두 잊어버리고다시 그림을 그리라는 듯새해를 맞아 하늘은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았다그렇다면 무엇을 그릴까무엇을 그려야 할까 대들보가 흔들리며 사방이 아우성이고급작스럽게 날아든 첫날의 비보에 놀라움과 슬픔은일순간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는데눈물이 마르기도 전에다시 그림을 그리기에는 햇살도 내키지 않는지일찌감치 빛을 거둬들인 다음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심정으로버티고 있던소한 날하늘은 가만히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는다 그럼에도 다시 그 무엇을 그려야 한다기에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하지만이제는 지워야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묵은 번데기에서 빠져나와다시 그려야 할 그림을 구상하며흔들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워뽀드득뽀드득하얀 도화지 위를 아슬아슬 걷는다.

꽃잎

꽃잎 / 정대수 눈이 내리듯 바람에 흩날리다가나비처럼 자유롭게 나부끼는 꽃잎내가 앉은 자리를 곱게 수놓으며모였다 흩어졌다 한다한잎 두잎 손톱만 한 꽃잎들로먼저 꽃잎이라는 글자를 만들며꽃잎처럼 부드럽게 살아가자멋쩍은 다짐을 해보다가이어서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만들며성깃해진 지난 기억들을살며시 들추어보기도 하면서계면쩍게 웃다가사랑만큼이나 어렵사리 만들어진 하트는나를 사랑해 주고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숨겨놓은 마음을 담아 바람에 실어 보낸다무거운 마음을 다독이는 글씨와 그림은그늘에 갇힌 날 선 도끼눈을 부드럽게 하고순결함으로 세상을 보게 하며굳어버린 얼굴에 미소를 찾아주어가만히 꽃잎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갈무리

갈무리 / 정대수 발자국 소리 벗 삼아 하얀 눈길을 걸으면 새로운 세상을 걷는 신선함이 있다 눈 덮인 산 들머리에 들어서면 모두가 잠시 숨을 죽이는 듯 정적이 감도는데 숯등걸 같은 속내 걸머지고 아슴아슴 산 중턱에 올라 뜨거운 입김 토해내며 발아래 세상을 말없이 호령하면서 마치 준비된 자리인 양 사방이 하얀 눈밭에 앉으면 부릅떴던 눈도 검게 그을렸던 마음도 하얗게 정갈해진다 켜켜이 쌓인 눈 휘어진 나뭇가지에 실린 무게도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소리 없이 녹아내리듯 명멸하는 시간 애써 붙잡고 거듭나기를 안간힘 쓰는 중에 소반하게 다잡는 각오 눈밭에 새기며 또 한 해를 갈무리한다.

오늘은 대성리다

상봉역에 가면 갈 곳이 많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행복한 고민에 갈등하는 상봉역 7호선을 타면 작고 아담한 봉화산부터 바위가 아름다운 불암산 김시습이 사랑했던 수락산 서울의 명산 국립공원 도봉산 반대쪽에는 산양이 산다는 용마산 고구려의 역사가 숨 쉬는 아차산 꿈의 정원 어린이 대공원 중앙선을 타면 거인의 숨결을 느끼는 효창공원 예봉산, 운길산, 청계산, 용문산 팔당의 한강 두물머리는 쉬었다 가라고 물결 일렁이는데 오늘은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로 간다. 천마산의 유혹을 뿌리치고 청평의 손짓도 마다하고 오늘은 대성리다. 오월 바람에 한들거리는 수양버들 아카시아 향기 애기똥풀꽃 수놓은 푸른 초원을 거닐며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마실 나온 아이들 웃음소리 반가운 천상의 강변 오늘은 대성리로 정했다. 건강하세요.^^

선물과 귤

선물은 좋다. 사람을 서프라이즈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는 기쁨과 받는 즐거움은 선물만이 가진 매직이다. 생일, 기념일, 축하, 감사할 일에는 선물이 따라간다. 선물에는 정도나 기준이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받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거기에 정성을 다한 손편지나, 사랑이 담긴다면 요즘 말로 짱이다. 게다가 뜻밖의 깜짝 이벤트는 평생 추억으로 남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선물에도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바리바리 들고 다닐 때가 있었던가 하면, 외식으로 가족잔치를 하는가 했는데, 요즘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고 현금 선물을 선호한다. 코로나 3년 차에 비대면 선물로 돈만 오가는 현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웃프다. (중략) 구리시에는 돌다리 구리 전통시장이 유명하다..

푸성귀의 글 2022.01.26

신축년을 보내며

한 해 동안 쓴 일기장이 두툼한 책이 되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일기는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발자국이 된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책을 읽듯이 일기장을 훑어본다. 다 기록은 못하였지만 말 그대로 나의 소소한 일상이 보이며 지나온 날들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많은 일들 중에서도 가장 큰일은 부끄럽지만 지금까지도 사랑이 뭔지, 행복이 뭔지, 인생이 뭔지, 삶이 뭔지,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미완성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는다.(중략) 일기를 기준으로 한 해를 정리해본다. 첫째, 독서다. 둘째, 글을 쓰고 있다. 셋째, 대한문인협회 경기지회 동인지 "달빛 드는 창"에 "시간을 쪼개자"는 수필로 참여를 하였다. 넷째, 일생일대의 위..

푸성귀의 글 2021.12.30

병원과 미장원

어느 날인가부터 누우면 명치 아래 복부에 볼록한 것이 만져졌다. 그리고 약간의 통증도 있었는데 마사지를 하듯 쓸어주면 없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병원 가기 싫어서 건강검진도 한번 안 하고 살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견디면 안 될 것 같아 61년 생애 첫 건강 검진 예약을 했다. 평일에는 회사일에 지장이 우려되어 토요일로 부탁을 했고 병원에서는 날자와 시간을 정해주며 검진 하루 전날의 저녁 8시부터는 금식을 하라고 하고 당일에는 물도 먹지 말란다. 하루하루 긴장과 잡념으로 잠을 설쳐가며 토요일을 기다린다. 별일은 없겠지? , 검진은 제대로 할까? , 의사의 실력은? , 장비는 좋을까? (중략) "약은 다 드셨어요?"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뜬금없이 묻는다. 다 먹었다고 하자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며 별 이상 ..

소설(小雪)에

소설(小雪)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친다 떨어진 낙엽은 바닥에서 정처 없이 뒹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른 잎사귀마저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이 휘젓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새들마저 조용해진 해가 기울어져 가는 소설(小雪)에 좋은 소식이 올 것만 같고 첫눈도 기다려지는 것은 아~ 이렇게 가슴 뛰게 좋은 것은 내 허리가 펴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음이라. 건강하세요.^^

근심을 잊는 고개 "망우 고개길"

한 여름 더위가 심상치 않다. 출근하면서부터 몸으로 느끼는 더운 열기는 실내에서 가만히 있어도 에어컨을 켜야만 견딜 수 있을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는 창문을 열어두면 그런대로 맞바람에 시원했는데 7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기 온도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그래도 "여름이면 더워야 제맛이지." 했는데 지금의 기온은 더운 것보다는 찐다거나 굽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기상청을 우스개 말로 "구라청"이라고 한다. 날씨를 예보하는 것이 어려운 줄은 알지만 빗나갈 때가 너무 많으니...ㅎ 어쨌든 기상청에서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상층까지 덮여있는데 여기다 티베트 고기압까지 확장하면 한반도에 "열 돔"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보를 한다. 그렇게 되면 극심한 무더위를 겪어야 한다기에 조금은 겁도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