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의 글/자작 글

손 이야기(나의 이야기-2)

푸성귀-1 2021. 3. 29. 16:14

서너 명이 뭉쳐서 최대한의 효과를 창조하며 살아가야 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가족 같은 재미도 있지만 매일 거의 전쟁 같은 날이다. 한 사람이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일손이 비게 되면 초 비상이다. 게다가 동일 업종에 가격경쟁도 나름대로 치열하고 더욱이 2020년은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매출이 많이 줄어서 아주 힘든 때였다. 어느 날 출근길에 전철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노약자석에 한 젊은이가 앉아있는 모습이 얼굴만 간신히 보였다. 참고로 나는 키가 작아서…ㅎ 주위에는 연로하신 분들도 여럿 서 계셨는데 "참 경우 없는 젊은이구나." 생각하다 몇 정거장이 지나고 그 젊은이가 내리기에 "대체 어떤 놈이야?" 하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보았더니 손에 깁스를 하고 보호대로 의지한 환자였다. 그 순간 한 면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했던 나는 아차! 했다. 만약에 이러쿵저러쿵 잔말이라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니 그나마 가만히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며 스스로 안도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2012년에 나도 손가락을 다쳐서 두 번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다시 생각해봐도 끔찍했던 순간이었는데 밀려드는 주문을 서둘러 작업하다 재단기에 손가락 두 개가 끝부분이 잘린 것이다. 긴급히 서울에 대학병원 두 곳을 갔으나 입원실이 없어 골든타임만 허비하고 수지 전문병원을 안내받아 접합 수술을 한 후 난데없는 병실생활을 하면서 차츰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전기톱, 모터벨트, 작업현장, 자동차사고 음식점 등 여러 분야에서 손을 다친 환자들이 병실마다 가득가득한 상황에 무척 놀랐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냥 조금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놀다 다쳐서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가벼운 부상이었다.

몇 주가 지나 오른쪽 팔꿈치까지 붕대로 드레싱을 하고 퇴원 후 집으로 왔다. 오른쪽 손은 사용을 못하니 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생활을 하는데 문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답답하고 짜증이 나더라는 거다. 밖으로 나와도 주위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고 사소한 것에 예민해지면서 생각한 것은 단순 손가락을 다쳐서 활동에 제약이 있는데 차차 마음도 우울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손을 많이 다친 사람들의 일상을 보니 손도 회복해야겠지만 정신적 심리적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열차 안에서 보았던 손을 다친 분의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

 

다쳤던 손가락이 회복되면서 차츰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좀 웃기면서 충격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른손의 손가락 두 개의 길이가 전보다 좀 짧아져서 세수를 할 때면 다친 손가락이 느닷없이 콧구멍을 찔러 코에 상처가 나는가 하면 손가락 끝이 약간 굽어서 손톱을 깎을 때도 손목을 비틀어야 하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것들은 잘 주워지지 않는데 더 큰 문제가 겨울이 되어 나타났다. 웬만한 추위에도 장갑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끄떡없던 손이었는데 기온이 떨어지면 어느 순간 다친 손가락 끝이 아리고 무뎌지면서 심지어는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레이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몇 겹의 장갑과 손난로는 필수품이 되었다.

 

요즘은 손으로 글을 쓸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필기를 연필로 다 했는데 연필심은 왜 그렇게 잘 부러지고 빨리 닳아 짧아지는지 매일 연필을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다 칼날에 손가락을 베이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종이를 취급하면서 종이에 손을 베일 때가 더러 있다. 아무 힘없을 것 같은 종이가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날카롭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한두 장이야 그렇지만 손바닥 만한 크기에서부터 좀 보태서 대문짝 만한 종이들을 뭉터기로 잡으면 느낌이 다르다. 종이의 무게도 이겨내면서 잘 간추려서 책으로 역어내는 작업에는 숙달이 되어도 여차하는 순간 종이의 예리함에 쓰린 맛을 보게 된다. 문제는 베인 곳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그 자리를 베이면 그 아픔은 순간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정도다. 장갑이 그나마 손을 보호해주는데 작업 중에는 좀 불편하기도 하고 날카롭고 세밀한 작업은 맨손일 때가 많다.

 

2020 경자년의 여름은 54일간의 기록적인 장마에 폭염도 대단했었다. 게다가 2월 말 코로나 19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제안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시행하면서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불편함은 사람들을 정말 답답하게 했다. 방송에는 휴일에도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했지만 더운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동네 산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또 산을 돌다 쉬어가기에 좋은 길목의 야외주점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7080 음악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당기기에 충분하다. 탁 트인 환경에서 몸도 마음도 식히고 짙은 녹음을 마주하며 에어컨이 아닌 대형 선풍기가 불어주는 바람에 얼음 막걸리 한잔이 그나마 좋다.

자리에 앉자 여러 대의 선풍기중 한대를 주인장이 우리에게로 방향을 돌려준다. 잠시 후 바람의 세기가 좀 약해진 것을 느낀 옆 테이블 사람들이 뺏긴 선풍기의 방향을 다시 돌려놓는 등선풍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술을 기울이던 옆 사람들이 갑자기 밴드를 찾고 야단법석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 사람이 술병을 따다가 병뚜껑에 손가락을 베여서 피가 제법 나는데 휴지로 응급처치를 하며 주인장에게 밴드를 요청했으나 없다고 했나 보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손가락을 베인 사람에게 밴드를 건네주었다. 순간 일행들의 말투와 낯빛이 조금 달라지면서 선풍기와의 신경전은 끝났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일행들 중에 누구에게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춘분"을 앞두고 2021 신축년 여름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주어질지 기대하면서(손 이야기-3에서 계속)

 

레이노 현상: 한랭이나 심리적 변화에 의해 손가락이나 발가락 혈관의 연축(순간적인 자극으로 혈관이 오그라들었다가 다시 제 모습으로 이완되는 것)이 촉발되고 허혈 발작으로 피부 색조가 창백, 청색증, 발적의 변화를 보이면서 통증, 손발 저림 등의 감각 변화가 동반되는 현상을 말한다. 유병율은 일반 인구의 약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이노 증후군 [raynaud’s phenomenon]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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