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 정대수
발자국 소리 벗 삼아
하얀 눈길을 걸으면
새로운 세상을 걷는 신선함이 있다
눈 덮인 산 들머리에 들어서면
모두가 잠시 숨을 죽이는 듯 정적이 감도는데
숯등걸 같은 속내 걸머지고
아슴아슴 산 중턱에 올라
뜨거운 입김 토해내며
발아래 세상을 말없이 호령하면서
마치 준비된 자리인 양
사방이 하얀 눈밭에 앉으면
부릅떴던 눈도
검게 그을렸던 마음도
하얗게 정갈해진다
켜켜이 쌓인 눈
휘어진 나뭇가지에 실린 무게도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소리 없이 녹아내리듯
명멸하는 시간 애써 붙잡고
거듭나기를 안간힘 쓰는 중에
소반하게 다잡는 각오 눈밭에 새기며
또 한 해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