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의 글/자작 시

갈무리

푸성귀-1 2023. 12. 28. 16:07

갈무리 / 정대수

 

발자국 소리 벗 삼아

하얀 눈길을 걸으면

새로운 세상을 걷는 신선함이 있다

 

눈 덮인 산 들머리에 들어서면

모두가 잠시 숨을 죽이는 듯 정적이 감도는데

 

숯등걸 같은 속내 걸머지고

아슴아슴 산 중턱에 올라

뜨거운 입김 토해내며

발아래 세상을 말없이 호령하면서

 

마치 준비된 자리인 양

사방이 하얀 눈밭에 앉으면

부릅떴던 눈도

검게 그을렸던 마음도

하얗게 정갈해진다

켜켜이 쌓인 눈

휘어진 나뭇가지에 실린 무게도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소리 없이 녹아내리듯

 

명멸하는 시간 애써 붙잡고

거듭나기를 안간힘 쓰는 중에

소반하게 다잡는 각오 눈밭에 새기며

또 한 해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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