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의 글/이동네 저동네

수종사 사적기

푸성귀-1 2009. 6. 18. 12:52

 

 

수종사 사적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 운길산 수종사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가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수정사리함(사리 14과)을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안에 모셨다.

1458(세조 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 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 방백에 충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해인 1459년에 수종사탑을 건립하였다.

1493(성종 24년) 후궁 명빈 김씨가 옥제 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 하였으며

1890년 주지 풍계 혜일은 고종황제로 부터 두 차례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에 빛이 발하였다.

1939년 일조 태욱 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 전쟁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 부터 금해당 동산은 응진전선불장 삼정현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등을 세워 사적을 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 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 불기 2551년 동산짓고 선주석 쓰다 -

 

내용을 그대로 푸성귀가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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