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의 글/자작 글

푸성귀-1 2009. 6. 18. 19:47

 

                                       

 

                       정

 

십오년여를 함께 지내온 낡은 선풍기 한대가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차츰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이 깊어지고

여기 저기 아픈곳도 생기듯

선풍기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여러번 이사를 따라 다니다 보니

흠집난건 고사하고

발에 걸려 자빠지고, 뒹굴면서

깨지고, 바스라지고...

 

끼르륵 끼르륵...

아파하는 소리도 나고

볼품이 짝이없습니다.

 

 

 

몇번이고 내다 버릴까

망설이다가

또 한쪽구석에 치워놓습니다.

정때문에

 

올해는 저녁때가 되면 좀 선선합니다.

그래서인지 신경을 안썼는데

밥을 먹다가 선풍기 생각이 났습니다.

 

뜨거운 매운탕 국물에 매운고추를 그것도 고추장에 쿡 찍어 먹었더니

온 몸이 화끈거리면서 땀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놈은 버려진듯 거기에 있었지요.

덮어두었던 비닐을 걷어내자

묵은 먼지로 엉망입니다.

 

이젠 정말 버려야겠다.

마음을 먹었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이 남아 있어서

한번 궁굴르기나 해볼까?

그래서 안되면 이젠 진짜 버린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전원을 연결하자

기가막히게 잘돌아 갑니다.

버릴려 했던 마음은 온데 간데없고

정성을 들여 깨끗이 씻고, 닦고, 붙였습니다.

깨끗해진 그놈의 모습을 보자

내마음까지도 개운함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그놈도 

이뿐색시 뽑듯이 엄선해서 골라온

한인물 하던 물건이였지요.

십수년을 같이 살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찮은 것이지만

그래서 쉽게 내다 버릴수만은 없었답니다.

 

볼품은 없지만 예전처럼 시원한 바람을 잘도 토해냅니다.

그래!

정도 추억도 많이 싸였다.

함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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