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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

푸성귀-1 2009. 7. 7. 18:02

                 

 

        단 수

 

사는곳이 서울입니다.

서울도 다 같은 서울이 아니더군요.

변두리 혹은 외진 곳이라고도 하고요.

대부분이 도시 중심가면 이곳은 시골쪽에 속하는 한적한 마실입니다.

속된말로 그 흔해빠진 아파트도 찾아보기가 힘들고요.

오층이상의 건물도 보기 드물답니다.

그렇다고 시를 벗어나지도 않고요.

재개발이란 말도 한번 나오는듯 하더니 쏙 들어갔나 봅니다.

이만하면 대충 감이 잡히시나요?

 

그래도 명색이 서울특별시 입니다. 

집에서 약 십분을 걸어나가면

재래시장이 있었던곳에 이십층 이상의 고층건물도 딱 한곳이 몇년전에 들어섰고요.

거기에 CGV영화관도 생겼고요.

쇼핑몰도 있답니다.

 

벌써 그곳에서 딱 십년을 살았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요.

그만큼 긴 시간인거지요.

그런데 우리동네는 변한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곳에 비하면 더 촌동네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좋은구석도 있습니다.

 

돈이 자동으로 절약됩니다.

왜냐구요?

동네 어귀에 조그만한 마트가 골목마다 세군데 있는데요.

필요한것은 잘 기억해 뒀다가 귀가길에 이곳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잊어버리면 다음날로 미뤄지고요.

집에서 마트로 다시 갈려면 귀찮아서도 그냥 참습니다.

그러다 보면 돈이 굳습니다.

 

조용해서 좋습니다.

가구수가 적다보니 당연히 소리가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소리, 사람소리, 차소리... 

반면에 새소리, 바람소리, 사람들 발자국소리, 개소리....

이런 소리들이 크게 들립니다. 

그래서 조금만 큰소리를 내도 동네에 울려 퍼집니다.

조금 보태자면 부부싸움 이라도 할라치면 원정을 가야할 정돕니다.

ㅎㅎ

 

불량스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아이들. 학생들, 어른들 할것없이 모두가 착합니다.

서로 조심해서 일까요?

욕하고, 거칠게 행동하고, 싸우고, 술주정부리고....

이런 광경을 거의 본적이 없으니까요.

촌스런 동네다보니 길들도 좀 어둡습니다.

밤이되면 인적도 드물고요.

그런데도 나쁜일은 없었는것 같습니다.

 

물이 참 좋습니다.

저의 집이 약간 언덕인데요.

수돗물이 기가 막히게 잘나옵니다.

시원하고요.

맛도 좋습니다.

어떤때는 물병에 받아 뒀다가 그냥 먹기도 합니다.

지금껏 살면서 단수된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도 아무변화 없는 길을따라 집으로 가고 있는데 작은 종이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휴대전화로 불을 밝혀서 보았지요.

 

주말(4일)밤에 단수가 된다는 안내문입니다.

주말은 등산을 하는 날인데요.

몸이 무거울때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산행을 하는데 요즘이 좀 그렇거던요.

이렇게 더울때 단수가 된다니 대책을 세워두고 가야합니다.

 

가만이 더듬어보다 아주 훌륭한 물건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이놈인데요.

오십평생에 절반을 저를 따라다닌 놈입니다.

이놈을 업어올 당시의 팔십년대에는 집집마다 이런 고무통 하나씩은 다 있었을걸요?

용도도 다양했지요.

물통으로, 김장용 절임통으로, 세탁용으로, 곡물등의 운반용으로

타원형으로 생긴놈은 목욕통으로까지....

뭐니 뭐니해도 숨바꼭질할때가 제일입니다.

딱 뒤집어 쓰고있으면...

ㅎㅎㅎ

 

차츰 세월이 흐르면서 쓰임새가 자꾸만 줄어들었습니다.

간혹 버릴까.

아니면 흙을 가득담아서 나무를 심어놓을까도 생각하다,

결국은 집안에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오늘 드디어 제구실을 하게되었습니다.

옛날을 생각하며 깨끗이 씻어서 물을 가득 받아두었죠.

단수덕에 제법 폼나죠? 

 

여름에 물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언제든지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쏟아져서 아쉬움을 모르고 살았는데요.

이번 단수를 계기로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물의 소중함과 수돗물을 아껴써야함을  

또 버려질 뻔 했던 통이 긴~세월을 지난 지금에와서  유용하게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산행을 하면서 흘린땀과 흙먼지를 받아둔물로 말끔이 씻어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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